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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임신부님강론
연중 28 주일: 어느 부자 청년 이야기와 應無所住而生其心 (금강경)
글쓴이 : 박성칠 날짜 : 2018-10-14 09:10:07

연중 제 28 주일                                                                                                                 2018. 10. 14

 

사순절이 되면 예수님 수난곡을 종종 듣게 되는데요.

그런데 바흐의 요한 수난곡을 어떤 사람은 바흐의 열정으로 번역했습니다 (passion).

이런 오역(誤譯)의 예는 주변에서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전쟁 때의 지뢰밭(minefield)’내 땅(아군 지역)’으로 번역됩니다.

옛 독일 보름스 의회(Diet of Worms)’벌레들의 식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도행전(The book of Acts)’행동지침서로 둔갑됩니다.

007 영화 닥터 노(Dr. No)’의사가 필요 없다로 번역됩니다.

코스타리카 보도진(Press of Costa Rica)’코스타리카의 압박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참조, 서옥식의 오역의 제국’)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낙타와 바늘귀> 이야기에 나오는 낙타도 오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원래의 의미는 밧줄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그리스어로 낙타밧줄이라는 단어가 모음 하나 차이이기 때문이죠 (kamelos/kamilos).

그러니 가능성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번역은 이렇게 되겠지요.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는 밧줄이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밧줄이든 낙타든 바늘귀를 통과하지 못하다는 면에서는 둘 다 똑같습니다.

작은 데를 큰 것이 통과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그러나 바늘귀 같은 작은 문을 통과하는 길도 있습니다.

성경 뿐 아니라 모든 경전이 그 길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주일학교 꼬마들이 부르는 노래 속에서도 그 길은 존재합니다.

 

부자가 못 간 나라, 하느님 나라

거지도 간 나라, 하느님 나라

부자도 거지도 간 나라, 하느님 나라

돈 갖고 못 간 나라, 하느님 나라[...]

믿음으로 거듭 나야 가는 나라, 하느님 나라

 

이 노래에 오늘 복음의 핵심이 아주 간단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부자가 아무리 많은 돈을 싸들고 온다 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거듭 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낙타는 운명적으로 훌륭한 짐꾼으로 태어난 동물입니다.

항상 등에 바리바리 짐을 싣고 다닙니다.

그러다가 건물을 만나게 되면 그 짐 때문에도 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낙타가 짊어진 짐은 복음에 나오는 부자의 돈이나 재물과 연결됩니다.

부자가 짊어진 돈의 부피가 커서 천국의 작은 문을 통과할 수 없는 격입니다.

사람들이 짊어지고 사는 것은 사실 돈 자체 보다는 돈과 재물에 대한 욕심일 것입니다.

 

부판이라는 벌레가 있다는데

이 벌레는 짐을 지고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는데

무엇이든 등에 지려고 한다는데[...]

짐을 내려주면 다시 일어나 또 다른 짐을 진다는데[...]

평생 짐만 지고 올라간다는데

올라가다 떨어져 죽는다는데

 

언젠가 소개해 드린 천양희 시인의 <어떤 인생>이라는 시입니다.

우리의 삶은 부판이라는 벌레를 닮았는지도 모릅니다.

더 가지려고, 더 움켜쥐려고, 가진 것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하루하루입니다.

그 욕심과 탐욕의 무게가 우리 어깨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구원의 문은 바늘귀처럼 좁다고 하였습니다 (마태 7,13-14: 루가 13,24).

그 좁은 문으로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의 엄청난 탐욕의 짐을 벗어 던지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움켜쥔 손으로는 병에서 손을 빼낼 방법이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움켜쥔 손을 놓아야 병에서 손이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등에 짊어지고 출가하는 수행승은 없습니다.

돈도, 재물도, 명예도 뒤에 남겨 놓고 훌훌 떠나는 게 출가입니다.

아버지의 집도 미련 없이 떠나가는 게 출가입니다.

아브라함은 나이 일흔 다섯에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고향 땅을 떠나갔다 했습니다.

그 젊지 않은 나이에 익숙하고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머물지 않고 떠나가는 것'을 불교에서는무주(無住)’라고 합니다.

없을 머물 입니다.

어느 한 곳에, 무엇인가에 얽매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을 찾아가는 길에서 이 머물지 않는 마음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살아오면서 그가 머물러 있던 모든 것을 결국 쓰레기로 여겼다 했습니다.

머물러 집착했던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알고 보니 전부 쓰레기였다는 것이죠.

 

신앙이란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성체 앞에서 주님과 함께 하고 있는 시간에 다른 것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기도하는 데 다른 것에 매달려 있고 집착하고 있으면 기도할 수 없는 법입니다.

다른 것에 집착하고 머물지 않을 때 우리는 주님을 따를 수 있을 것입니다.

너는 가진 것을 팔아 나누어 주고 나를 따라 오너라라는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금강경에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낸다는 말입니다.

다른 데 머무는 바 없을 때(應無所住), 우리는 새로운 마음을 낼 수 있습니다(生其心).

다른 데 머무는 바 없을 때, 우리는 비로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른 데 머무는 바 없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主一無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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