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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30 주일: 심청 이야기와 예리고의 소경
글쓴이 : 박성칠 날짜 : 2018-10-28 13:10:00

연중 제 30 주일                                                                                                                        2018. 10. 28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인당수 풍랑 중에 빠져 죽던 청이가 살아서 여기 왔소.

어서 어서 눈을 떠서 저를 급히 보옵소서.“

심청(황후)이 울부짖으니 심 봉사가 어쩔 줄을 모른다.

"내가 지금 죽어 수궁에 들어 왔느냐. 내가 지금 꿈을 꾸느냐. (중략)

내 딸이면 어디 보자. 어디 내 딸 좀 보자.

아이고, 내가 눈이 있어야 내 딸을 보제. 아이고 답답하여라.”

두 눈을 끔적하더니만 눈을 번쩍 떴구나 (판소리, 심청가 )

 

<심청가>, ‘심 봉사 눈뜨는 대목의 일부입니다.

심청이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供養米) 삼백 석에 몸을 팝니다.

그리고 인당수, 푸른 바다 깊은 물에 몸을 던집니다.

심청전의 이 이야기는 많은 해석을 낳습니다.

 

돌아가신 최인호 선생은 <수상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심 봉사는 눈을 떠야만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른 보려()’하기보다 눈을 뜨려고만 했다.

심 봉사의 눈을 뜨게 한 것은 공양미 삼백 석이 아니라 딸을 보고 싶어 한 사랑이었다.

그 사랑이 있었다면 딸을 죽이지 않고서도 앞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분은 심청전 이야기를 불교적 시선으로 이해합니다.

심청전은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인데요.

심청이는 심 봉사의 딸이 아니라 심 봉사 안에 있는 참 나와 같은 존재입니다.

심청이가 뛰어드는 인당수는 거짓 나가 아닌 참 나가 뛰어드는 번뇌의 바다입니다.

진정한 자아는 고통을 피하지 않고, 고통을 직시하고, 고통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할 때 망념(妄念)은 사라지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문 민주, 금산사 연못물로 심 봉사 눈떴다는데, 전북일보, 2018-10-20)

 

저는 그냥 있는 그대로 심청전을 읽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딸은 아버지를 지극 정성 사랑합니다.

아버지가 눈을 떠서 대명천지(大明天地) 밝은 세상을 보면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길이 있습니다.

자기가 죽음으로써 아버지가 사는 길입니다.

 

심청은 자기희생으로 다른 사람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미 눈을 뜬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심청, ‘마음()이 어둠을 걷어내고 맑다()’는 심청(心晴)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마음이 아직 장님인 상태입니다.

그러니 심() 봉사인 것이죠.

 

늘 복음의 바로 앞부분에는 주님의 세 번째 수난 예고가 실려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불안에 싸여 어리둥절해 있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는 길입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손에 넘어가 사형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을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마침내 죽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스승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 술 더 떠서 자기들 사이에서 누가 가장 높은 지 꼴사납게 자리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예리고의 소경을 치유하는 이야기는 제자들의 자리싸움 이야기 바로 뒤에 따라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마르코 복음사가의 깊은 뜻을 눈치 챌 수 있습니다.

예리고의 소경이 눈을 뜬 것처럼 제자들도 마음의 눈을 떠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제자들은 수난과 죽음과 십자가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게 될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떠야 십자가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불가에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는 말이 있습니다.

번뇌가 곧 깨달음이라는 말인데, 번뇌가 있어 깨달음이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식으로 풀어 말한다면 십자가즉부활이요, ‘고통즉은총’, ‘희생즉구원입니다.

사실 십자가 없이는 부활도 없는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기도>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레이첼 나오미 레멘 ).

유대인들은 레치얌하고 건배하는데, 그 말은 삶을 위하여!”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손자는 그 말이행복한 삶을 위하여라는 뜻인지 묻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냥 삶을 위해서라는 뜻이란다.”하고 대답합니다.

어린 손자는 도저히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레치얌은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고 부당하게 생각되더라도,

삶은 거룩한 것이며 서로 축하하는 게 마땅하다는 의미란다.”

 

아이는 나중에 커서 할아버지의 말씀을 알아듣게 되고 이렇게 말합니다.

유대인들의 삶의 역사는 무척이나 굴곡이 진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오랜 세월 동안 늘 레치얌을 외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는다. 어쩌면 진정으로 상실과 고통을 체험한 사람만이 삶의 소중함과

경이를 깨닫고 레치얌을 외칠 수 있는지도 모른다“ (76-79).

 

상실과 고통이 삶의 소중함과 경이로움으로 이어집니다.

번뇌를 통해 깨달음에 이를 수 있고, 십자가가 부활로 연결됩니다.

고통스럽지만 희생과 수난이 은총과 구원으로 연결됩니다.

눈이 열려 새롭게 태어나지 않고서는 절대로 알아들을 수 없고 행할 수 없는 차원입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새롭게 눈을 뜨게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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