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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단 졸업식(24. 2. 4)
글쓴이 : 오금동성당 날짜 : 2024-02-13 01:02:14   조회 : 273





김중호 마르코 주임신부님 강론 중에서

지금 이 시간 우리 서울대교구 본당에서는 새 사제들의 첫 미사가 봉헌되고 있습니다. 
사제로서 첫 발을 내딛는 하느님의 일꾼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원했으면 합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하느님은 좋은 분이시고 또 좋은 것만을 주신다고 했는데 왜 고통을 주시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시는 분들을 만나고는 합니다. 
과연 고통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왜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것을 허락하시는 걸까요?

베드로 1서에서는 '하느님의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보다 낫습니다. ' 라고 적혀있고, 
또 히브리서는 '무슨 견책이든지 그 당장에는 즐겁기보다는 오히려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책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은 마침내 평화의 열매를 맺어 올바르게 살아가게 됩니다.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울러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장차 우리에게 다가올 영광에 비추어 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말로 우리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견뎌내고 인내하여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을 성서 안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오늘 제1독서에 등장하는 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고통을 대하는 상반된 두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욥은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모두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라 생각하고 인내심을 갖고 고통을 견뎌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욥의 아내는 고통을 인내로 견뎌내려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하느님을 욕합니다. 
온갖 고통과 아내의 모멸 속에서도 인내심을 잃지 않았던 욥은 마침내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욥이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것이죠.
욥의 가족은 축복을 넘치게 받았는데 욥에게 저주의 말을 퍼부은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되지 않으며 그녀는 욥의 축복에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고통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고통을 겪지 않으면 좋겠죠. 그러나 우리는 욥의 모습을 통해서 고통에 맞서는, 고통 너머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그런 용기를 얻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들과 마귀들린 사람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없애주신 것인데, 고통을 없애주신 이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고통을 없애시는 것이 구원을 보증해 주지 않으며, 고통이 없는 상태가 곧 구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고통과 아픔이 전혀 없는 그런 곳이 아니라 슬픔과 고통이 있어도 위로가 있는 곳, 두려움이 있어도 나눔이 있는 곳, 갈등과 다툼이 있어도 용서와 화해가 있는 곳,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얼마든지 이룰 수 있는 그런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병들고 마귀들린 이들을 보고 불쌍히 여기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서로의 처지에 대해서 공감하고 그 어려움을 배려할 수 있을 때 고통을 이겨내는 힘이 되어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 모든 곳에 주님께서도 함께하고 계십니다.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하느님께 충실했던 욥의 인내와 믿음을 마음으로 새기면서, 우리 또한 이와같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주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도 그 너머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고, 또 그것을 이겨내는 위로와 나눔과 사랑과 용서의 은총에 감사드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